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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보험의 꽃’ 판매왕 줄줄이 몰락] (상) 사기·횡령 범죄 늘어,특히 남성보험사들 철새떼로 문제 심각

보험사 영업의 꽃으로 불리던 판매왕들이 줄줄이 몰락해 충격을 주고 있다. 실적부진 때문이 아니라 각종 사기와 횡령혐의로 범죄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과도한 수수료를 지급하는 보험사의 관행과 실적주의의 만연, 무늬만 전문설계사로 만드는 자격제도 등 요인도 복합적이다. 보험산업의 '격'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법과 제도개선을 통한 환골탈태의 노력도 필요하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2회에 걸쳐 보험왕들이 만들어지는 실태와 문제점을 분석해 2회에 걸쳐 싣는다.

#올 3월, A생명보험사 5년 연속 판매왕 출신의 설계사가 구속됐다. 서울 동대문과 명동일대 상인 수백명을 고객으로 관리하던 이 설계사는 2억원 상당의 고객 돈을 가로채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지난해 8월에는 H생명보험사 보험왕 출신 K씨가 고객 보험료 800만원을 횡령해 문제가 됐다. 그보다 앞서 3월에는 L손해보험사 보험왕 출신 설계사가 고객의 정보를 이용해 24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7월에는 D생명보험사 보험왕 출신 설계사가 거액의 보험료를 받아 임의로 다른 보험에 가입한 혐의로 구속됐다.

■만들어지는 '보험왕'

보험사들의 결산월은 4월이다. 이 때문에 5월은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회계를 시작하는 달로 각종 연도대상 시상이 집중돼 있다. 영업조직에는 잔치 시즌인 셈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판매왕들의 범죄가 연이어 터지면서, 일부 보험사들은 올해 예정된 외부행사를 취소하거나 내부적으로 간단히 마무리하는 등 행사를 대폭 축소했다. 최근 자사 보험왕이 구속되면서 연도대상 행사를 취소한 A생보사가 그 예다. 수십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으며 설계조직의 상징적 존재가 된 보험왕들의 범죄가 보험사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반대로 보험왕의 몰락으로 입는 타격도 마찬가지다.

보험왕들의 범죄는 크게 타이틀 유지를 위해 허위계약을 만들거나, 돈의 씀씀이가 커지면서 고객 돈을 유용하는 경우로 나뉜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과도한 수수료 지급과 실적이다. 모 대형 생보사 영업담당 임원은 "보험왕들은 대부분 회사 차원에서 만들어진다"며 "실적이 뛰어난 몇몇을 점찍어 놨다가 직·간접적으로 지원을 한다. 어느 보험사나 마찬가지다"고 털어놨다.

만들어진 보험왕들은 부와 명예를 거머쥐지만 부담도 커진다. 특히 몇 년 전부터 보험사들은 계약을 체결하면 7년간 나눠 지급하던 수수료를 '업-프론트'라는 제도를 도입, 2년 안에 몰아서 선지급하고 있다. 한방에 거액을 거머쥔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계속 보험왕 자리를 유지해야 하다보니 더 많은 수수료와 실적을 위해 허위 계약을 작성하거나 보험료 돌려막기를 하는 등 실적 우선주의가 판을 치게 된다는 것이다. 보험은 장기계약이 특성인 만큼 십수년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기본원칙이 돈 앞에 깡그리 무너지고 있는 것.

실제 보험사들이 설계사에게 지급하는 돈은 소형사의 경우 연간 수백억원에서 대형사는 수천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도 남는 사업비가 매년 2조원에 이른다. 이 돈은 보험 가입자로부터 거둬들이는 것이어서 매년 문제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사업비)모자라는 것보다는 쓰고 남을 만큼 책정하는 것이 유리하다"며 "보험사 부실의 근원 중 가장 큰 것이 수수료 체계다"고 말했다.

■대졸남성들 한때 각광…철새떼로 전락

지난 90년대 후반에 화려하게 등장한 남성전문설계사도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주변 친인척들에게 "하나만 들어달라∼"고 영업하던 아줌마 설계사들 대신 이들은 '대졸 남성'이라는 경력에다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상담을 해 보험설계사들의 질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실상은 반대다. 보험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나 도덕성은 버려둔 채 대학 졸업장만 가지고 오직 돈을 위해 뛰어들다보니 이들은 '조금만 수수료를 더 줘도 이직하는 철새설계사'의 대명사가 됐다. 설계사의 잦은 이직은 '고아계약'(담당설계사의 이직으로 관리자가 없는 보험)의 증가로 이어져 해약이 크게 늘어난다.

특히 대졸남성설계사 위주인 외자계 생보사의 경우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외자계 보험사들은 매년 보험왕 수상자가 바뀔 뿐 아니라 수상자들이 오래 몸담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외자계인 I생보사는 작년 연도대상을 시상했던 남성보험왕이, A생보사는 2000년대 들어 연도대상 수상 남성 판매왕 중 절반정도가 다른 곳으로 이직하거나 개인 사무실을 열었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이직하는 사람은 '좀 더 다양한 상품을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진정으로 고객을 생각하면 못 옮긴다"며 "높은 수당이 이직의 유일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일부 보험사들은 최근 남성 설계조직보다는 기존 여성조직의 전문성과 지원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지난해부터 뉴욕생명은 능력여성프로젝트를, 푸르덴셜생명은 'D 프로젝트'를 통해 대졸전문 여성 설계조직 육성에 나서고 있다. A보험사 관계자는 "여성 설계사는 연고영업에 따른 부작용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꾸준히 오랫동안 고객을 관리한다"며 "전문성과 학력을 갖추면 남성조직보다 낫다"고 평했다.

/toadk@fnnews.com김주형기자